조선 후기의 학자. 자는 형중(衡重). 호는 근계(近溪). 아버지는 도기(度璣)이며, 어머니는 영천이씨(永川李氏) 진흡(振○)의 딸이다. 이휘재(李彙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주경야독으로 가세를 일으키는 한편, 지극한 효심으로 아버지의 병환을 10여년 동안 보살폈으며, 특히 '근사록 近思錄', '동현대집 東賢大集', '대학' 등을 애독하였다. 또, 한편으로는 전통적 가치의 수호에 앞장 서 척사위정(斥邪衛正)의 운동에 힘썼는데, 1863년 동학교도들이 검거되었을 때 척사를 반대하던 그들의 무함으로 인하여 구속되었다가 후에 사실이 밝혀져 3개월 만에 대구에서 석방되었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이 내려지자, 같은 고을에 살던 남교엄(南敎儼)과 함께 강학소를 설립하여 후진양성에 전력하는 한편, 주로 사실적 묘사에 역점을 둔 저술을 하였다. 저서로는 '근계문집' 2권 1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