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학자. 자는 치상(稚常). 호는 동소(桐巢). 경상북도 영천 출신. 종봉(宗鳳)의 아들이다. 20세 때 이미 정문(程文: 과거를 볼 때 쓰던 일정한 법식의 문장) 각체(各體)를 모두 떼었으나, 1835년(헌종 1)에 비로소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이듬해 성균관전적, 사간원정언, 1837년 사헌부지평, 1852년(철종 3) 홍문관교리, 1853년 통정부호군 겸 오위장과 돈령부도정, 1855년 형조참의 등에 임명되었으나, 벼슬을 원하지 않아 모두 사양하고 한번도 관직에 나가지 않았다. 다만 헌종이 죽었을 때 곡반(哭班: 국상 때에 곡하는 벼슬아치의 반열)에 참여하기 위하여 한번 조정에 나갔을 뿐이다. 세상사람들로부터 남주(南州)에서 인격이 가장 고결한 선비로 꼽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