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학자. 자는 차산(次山). 호는 지수재(知守齋). 아버지는 좌랑 만익(萬翼)이며 어머니는 선산김씨(善山金氏)로 증대사헌(贈大司憲) 종필(宗泌)의 딸이다. 1696년(숙종 22) 사마시에 합격, 영소전참봉(永昭殿參奉), 사옹원봉사(司饔院奉事), 사포서직장(司圃署直長), 장원서별제(掌苑署別提), 의금부도사 등을 역임하고, 1718년(숙종 44) 황간현감(黃澗縣監)이 되었다. 이때 선정(善政)을 베풀어 송덕비가 세워졌다. 그뒤 한성부주부(漢城府主簿), 양성현감(陽城縣監)을 거쳐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에 이르렀는데,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의 난에 양성현감의 자리를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감찰을 파직당하고 목천(木川)에 유배되었다. 경사(經史)에 밝았고, 특히 자학(字學)에 조예가 깊어 '자학훈몽 字學訓蒙'을 저술하였다. 또한, 문장에도 일가를 이루어 변려문(騈儷文), 대책(對策) 등에 뛰어났다. 저서로는 '지수재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