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학자. 자는 진오(晉五). 호는 역암(○庵). 경상도 봉화 출생. 아버지는 필응(必應)이다. 이황을 사숙하였다. 1845년(헌종 11)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성균관박사와 전적(典籍)을 지냈고, 1864년(고종 1) 사헌부장령을 거쳐 예조참판에 이르렀다. 특히 그는 불교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시에도 능하여 금산사(金山寺), 태고사(太古寺) 등 사찰에 관한 내용이 많다. 당시 서양으로부터 들어온 천주학에 대하여는 강력하게 반대하여 1881년 '척사소 斥邪疏'를 올려 사학을이 땅에서 몰아내야 한다고 주장하고, 영남유생들에게 통문을 보내 연합전선을 펴면서 개화정책을 반대하다가 이만손(李晩孫)과 함께 유배되었다. 저서로는 '역암문집' 12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