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학자. 자는 원백(元伯). 호는 병옹(病翁). 아버지는 후석(厚錫)이며 어머니는 무안박씨(務安朴氏)로 문도(文度)의 딸이다. 1687년(숙종 13) 천거로 후릉참봉(厚陵參奉)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이어서 경릉참봉(敬陵參奉), 황산도찰방(黃山道察訪), 장흥고주부(長興庫主簿) 등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사양하고 나아가지 않았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의 난이 일어났을 때 마침 그는 병중이어서 아들 사일(思日)에게 계략을 일러주어 의병을 모아 적의 남하를 막고 민심을 안정시켰다. 그는 영달에 뜻을 두지 않고 성리학에만 전심하였으며, 저서로 '훈몽역의 訓蒙易義'를 남겼다. 사헌부집의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