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학자. 자는 백유(伯綏). 호는 남촌(南村). 아버지는 생원 명기(命基)이며, 어머니는 성주이씨(星州李氏)로 달신(達新)의 딸이다. 1721년(경종 1)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성시(省試)에는 뜻을 두지 않고 오직 향리에서 성현의 학문을 익히는 것을 일생의 업으로 삼고 지냈다. 만년에는 수도산(修道山) 무흘정사(武屹精舍)의 장서각(藏書閣)에 머물면서 그곳에 수장된 정구(鄭逑)의 수택장서(手澤藏書)를 읽는 한편, 그 중에서 본받을만한 요언(要言)만 뽑아서 '무흘서각초록 武屹書閣抄錄' 2권을 편저하기도 하였다. 그는 특히 '노론 魯論'을 중히 여겼고, '퇴서절요 退書節要' 7책을 비롯하여 '심경'과 '퇴도언행록 退陶言行錄' 등 숱한 선인의 글을 수사(手寫)하는 데 일생을 바쳤다. 저서로는 '무흘서각초록' 2권과 '남촌문집' 7권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