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학자. 자는 무관(務觀). 호는 종암(宗庵). 아버지는 교리(校理) 주석(疇錫)이며, 어머니는 전주이씨(全州李氏) 민장(敏章)의 딸이다. 증조부 시열 에게서 수학하였다. 1689년(숙종 15) 세자책봉문제로 시열(時烈)이 화를 당하자 과업(科業)을 폐지하고 경학에 전념하였다. 1725년(영조 1) 학행으로 사산감역(四山監役)에 천거되고, 이어 동몽교관(童蒙敎官)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나아가지 않았고, 재상들에게 글로써 시의(時義)를 낱낱이 진달하였는데 사지(辭旨)가 적절하고 의리가 명백하였다. 이간(李柬), 한원진(韓元震), 윤봉구(尹鳳九) 등과 교유하면서 심성이기설(心性理氣說)을 논하였으며, 이간의 인물성동론(人物性同論)인 낙론(洛論)을 적극 찬동하였다. 그는 '주역'과 '주자대전'을 깊이 연구하면서 후진양성에 전념하였다. 저서로는 '종암유고' 2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