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학자. 자는 계장(季璋). 호는 과재(果齋) 또는 이우당(二憂堂). 서윤 지웅(志雄)의 아들이다. 박세채(朴世采), 윤증(尹拯)의 문인이다. 1721년(경종 1) 학행으로 천거받아 연잉군(延○君: 뒤의 영조)의 사부(師傅)가 되었다. 그뒤 후진양성에 힘을 기울여 문하에서 4인의 문과 급제자와 19인의 생원, 진사를 배출하여 통정대부(通政大夫)에 가자되었으며, 벼슬은 지돈령부사에 이르렀다. 저서로 '속동유사우록 續東儒師友錄'이 있다. 시호는 효헌(孝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