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학자. 자는 계응(季凝). 호는 수곡(樹谷). 부친 권구(權榘)와 모친 이의(李檥)의 딸 재령이씨(載寧李氏) 사이에서 3남 중 3남으로 태어났다. 형으로 권진(權縉), 권집(權緝)이 있다.
어려서부터 재주가 출중하여 한번 보고 들으면 잊어버리는 법이 없었고, 효우도 지극하여 진(縉)과 집(緝) 등 두 형과 함께 어버이 곁에서 글 읽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았다.
처음에는 과공(科工)에 전념했으나, 1728년(영조 4) 이인좌의 난으로 곧은 뜻을 가진 사람들이 출세할 수 없음을 알고는 영달의 뜻을 버리고 오직 학문에만 정진하였다. 선비의 길은 집에서는 효도하고 나가서는 나라에 충성하는 것인데, 충성의 길이 막혔으니 오직 효도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부모를 극진히 모시고 학문에 몰두하여 경사 외에 음양(陰陽), 성력(星曆), 의방(醫方), 술수(術數)에까지 일가견을 가졌으며, 생활이 몹시 어려웠으나 이에 구애됨이 없었다.
저서로 '국조사적(國朝事蹟)'과 산천풍물에 관한 내용을 실은 '병산풍물지(屛山風物志)' 등을 남겼다. 문집으로는 '수곡집' 3책이 있다.
어려서부터 재주가 출중하여 한번 보고 들으면 잊어버리는 법이 없었고, 효우도 지극하여 진(縉)과 집(緝) 등 두 형과 함께 어버이 곁에서 글 읽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았다.
처음에는 과공(科工)에 전념했으나, 1728년(영조 4) 이인좌의 난으로 곧은 뜻을 가진 사람들이 출세할 수 없음을 알고는 영달의 뜻을 버리고 오직 학문에만 정진하였다. 선비의 길은 집에서는 효도하고 나가서는 나라에 충성하는 것인데, 충성의 길이 막혔으니 오직 효도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부모를 극진히 모시고 학문에 몰두하여 경사 외에 음양(陰陽), 성력(星曆), 의방(醫方), 술수(術數)에까지 일가견을 가졌으며, 생활이 몹시 어려웠으나 이에 구애됨이 없었다.
저서로 '국조사적(國朝事蹟)'과 산천풍물에 관한 내용을 실은 '병산풍물지(屛山風物志)' 등을 남겼다. 문집으로는 '수곡집' 3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