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우선언(禹善言)
  • 단양우씨(丹陽禹氏)
조선 초기의 학자. 자는 덕부(德父). 호는 풍애(楓崖). 단성군(丹城君) 공(貢)의 아들이다. 4대사화가 지난 뒤에 노장의 학풍을 좋아하여 권세와 명예의 세계를 천하게 보는 초속적(超俗的)인 청담파(淸談派)의 한 사람이었다. 1481년(성종 12)에 영남으로 김종직(金宗直)을 찾아가 자용(子容)이라는 자까지 받았다. 1482년 남효온(南孝溫), 홍유손(洪裕孫) 등과 일종의 동지회를 조직하고, 동대문 밖 죽림에 모여 시가와 담론으로 시사(時事)를 비판하며, 자신을 진나라의 죽림칠현에 비유하다가 1498년(연산군 4) 체포되어 갑산으로 유배되고, 노복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