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기의 학자, 문신. 자는 영지(寧之). 주계부정(朱溪副正) 심원(深源)의 아들이다. 진사로 있다가 1496년(연산군 2)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재주와 학식으로 현직(顯職)에 등용되었다. 이조정랑으로 있다가 갑자사화 때 아버지와 함께 김종직(金宗直)의 제자로서 바른 말로 간함으로써 참혹한 화를 입었다. 그의 아우 유반(幼槃)은 함께 죽었으며 작은아우 유정(幼靖)과 유령의 아들 돈복(敦復)은 어린아이로서 종이 되는 등 온 집안에 남은 사람이 없었다. 이행(李荇)이 갑자년에 거제에 귀양가 있으면서 친구 중에 살아 있는 이와 죽은 이들을 생각하여 절운(絶韻) 10수를 짓고 각각 주석을 붙여 애도하였다. 중종반정 이후 부자 모두 충성과 절의를 가상히 여겨 관작을 추증받았고, 특히 아버지 심원은 정문을 세워 표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