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학자. 자는 형백(馨佰). 호는 성암(省菴), 사정(思亭), 구옹(龜翁). 판관 치(穉)의 아들이고, '토정비결'로 유명한 지함(之○)의 형이며, 선조 때 영의정 산해(山海)의 아버지이다. 천문지리에 모두 정통하였다. 인종 때 문음으로 추천되어 장례원사평이 되었으나 당시 윤원형(尹元衡)이 국권을 잡아 횡포하므로 벼슬을 버리고 단양의 구담(龜潭)에 집을 짓고 정신을 수양하며 세월을 보냈다. 항상 푸른소〔靑牛〕를 타고 강가를 오르내리고 또 칡넝쿨로 큰 줄〔索〕을 만들어 구담의 양쪽 벽에 붙들어매고 날아가는 학을 만들어 매달아 타고 내왕하니 사람들이 보고 신선이라 불렀다. 선조 즉위 후에 청풍군수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