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정수민(鄭秀民)
  • 하동정씨(河東鄭氏),  출생~사망 : 1577 ~ 1658
조선 중기의 학자. 자는 자빈(子賓). 호는 춘수당(春睡堂), 동리(東里). 여창(汝昌)의 증손으로, 언남(彦南)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송씨(宋氏)이다. 정구(鄭逑)의 문인이다. 정유재란 때 부모가 모두 황석산성(黃石山城)에서 사절(死節)하였다. 학덕과 품행이 증조부 여창과 비슷하였으므로 소일두(小一○)라고 불렸다. 인조 때 군자감참봉으로 임명되었으나 취임하지 않았다. 무오사화로 여창의 유고가 일실되었으므로 정홍서(鄭弘緖)와 함께 유편(遺篇)을 수집하여 '문헌공실기 文獻公實記'를 간행하였는데, 여창의 유지(遺址)인 화개골〔花開洞〕을 국공(國工) 이징(李澄)에게 청하여 그림으로 그리게 하고, 유호인(兪好仁)의 시서(詩序)와 신익성(申翊聖)의 '화개현구장도(花開縣舊莊圖)'라는 비백전(飛白篆)을 얻어 속집에 수록하였다. 또한, 함양의 명현을 수록한 '천령지 天嶺誌'를 편집하고 '한강서간첩 寒岡書簡帖'과 '제현간첩 諸賢簡帖'을 편찬하였으며, 저서로는 '춘수당집' 5권을 남겼다. 뒤에 도곡사(道谷祠)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