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학자. 자는 자변(子變). 호는 조은(釣隱) 또는 적암은인(適巖隱人). 함안 출신. 아버지는 참봉 계(誡)이며, 어머니는 양천허씨(陽川許氏)로 주(鑄)의 딸이다. 박제인(朴齊仁), 정구(鄭逑), 장현광(張顯光) 등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일찍 부모를 여의고 형 몽룡(夢龍) 밑에서 학업에 정진하였다. 1613년(광해군 5) 생원시에 급제하였고, 1639년(인조 17) 학행으로 천거되어 자여도찰방(自如道察訪)에 임명되었으나 3개월 만에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뒤 동몽교관(童蒙敎官)에 임명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병자호란 때에는 의병을 일으켜 활약하였으나 화의가 성립되자 관직을 멀리하고 산수가 수려한 파릉군(巴陵郡)의 서계(西溪) 가에 은거하였다. 1702년(숙종 28) 임천서원(臨川書院)에 배향되고, 1729년(영조 5) 사헌부집의에 증직되었다. 저서로는 '조은집' 4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