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안덕린(安德麟)
  • 순흥안씨(順興安氏),  출생~사망 : 1563 ~ 1609
조선 중기의 학자. 자는 인서(仁瑞). 호는 사촌(沙村). 아버지는 호군(護軍) 총(聰)이다. 어릴 때부터 총명하여 신동이라는 말을 들었고, 8세 때 시부(詩賦)를 지었다. 유성룡(柳成龍), 정구(鄭逑)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84년(선조 17) 정시문과에 장원으로 뽑혀 있었으나 시관들의 분쟁으로 탈락되고 말았다. 1591년 관학(館學)의 유생들이 대신들의 죄를 성토할 때 그가 장의(掌議)로서 주관하였다.이 일로 권신들의 미움을 받아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다. 1603년 진사가 되었으나 벼슬을 단념하고, 풍기에 낙향하여 학문을 연구하고 제자들을 가르치며 살았다. 1606년 성균관에 올라왔다가 문묘의 동무(東○)에 익명으로 조신들을 중상모략한 낙서를 발견하고 하인들을 시켜 지워버리게 한 일로 문초를 받았으나 곧 풀려났다. 향리에서 이황(李滉)의 예안향약(禮安鄕約)을 응용, 실정에 맞게 시정하여 향풍을 진작시켰다. 풍기의 숭현사(崇賢祠)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