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학자. 자는 용회(用晦). 호는 화은(華隱). 할아버지는 영의정 흠(欽)이며, 아버지는 동양위(東陽尉) 익성(翊聖)이고, 어머니는 선조의 딸인 정숙옹주(貞淑翁主)이다. 김집(金集)의 문인으로, 1635년(인조 13)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이듬해 병자호란 때 끝까지 싸울 것을 주장하던 아버지의 뜻이 꺾이자 벼슬길을 단념, 태안의 백화산(白華山)으로 내려가 학문에 몰두하였다. 1643년 척화오신으로 지목되어 청나라에 붙잡혀갔던 아버지가 풀려나 이듬해 죽자 서울로 돌아왔다가 1652년에 다시 강릉으로 내려가 그곳에서 죽었다. 설화문학에 조예가 깊고 복서(卜筮), 성력(星曆), 산수 등에 해박하였다. 저서로는 '재조번방지 再造藩邦志'가 있다. 집의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