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이덕온(李德溫)
  • 전주이씨(全州李氏),  출생~사망 : 1562 ~ 1635
조선 중기의 학자. 자는 사화(士和). 호는 구촌(龜村). 임영대군(臨瀛大君) 구의 현손으로, 호남군(湖南君) 뇌(雷)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경주정씨(慶州鄭氏)로 군수 한원(漢元)의 딸이다. 1585년(선조 18) 사마시에, 1591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서경 까지 임금을 호종하고 세자책봉으로 민심을 수습하도록 건의하였다. 성균관학유에 임명되고, 세자를 용강으로 배종하였다. 그뒤 승문원박사, 주서를 지내고, 1593년 환도하여 호성훈(扈聖勳)을 받았다. 그뒤 예조, 병조의 낭관, 사예, 전적, 수찬, 필선 등의 관직을 역임하고, 외직으로 북청판관, 성주목사 등을 거쳐, 1606년 동래부사에 임명되어 비변책(備邊策)을 상소, 임금의 가납(嘉納)을 얻었다. 1607년 동부승지를 거쳐 우부승지에 올랐으나 1608년 광해군이 즉위, 영창대군(永昌大君)을 박해하자 직간하여 대북파에 의하여 관작이 삭탈되었다. 구촌의 선영 아래 낙향하여 은거하다가 1623년 인조반정 후 관작이 복귀되었고, 곧 울산부사에 임명되었으나 나가지 않고 고향에 내려가 학문연구에 전심하였다. 다음해 이괄(李适)의 난에 임금이 공주 까지 내려가자 나아가 호종하고 난이 평정되자 다시 병을 핑계하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저서로는 유집 20권과 유어(類語) 40권이 있었다고 하나, 현재 전하는 것은 5권 2책의 '구촌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