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목세칭(睦世秤)
  • 사천목씨(泗川睦氏),  출생~사망 : 1487 ~ 1593
조선 중기의 학자. 자는 공달(公達). 호는 현헌(玄軒), 산옹(散翁). 조부는 목철성(睦哲成)이고, 부친은 사직(司直) 목희안(睦希顔)이다. 모친은 안동권씨 권안(權晏)의 딸이다. 성균관대사성(成均館大司成)을 지낸 김식(金湜)과 내외종간으로 그의 문하에서 성리학을 수학하여 크게 성취하였다. 1519년(중종 14) 기묘사화로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를 비롯한 많은 사람이 화를 입게 되자 과거를 단념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학문에 정진했다. 윤칠림(尹漆林), 신명인(申命仁) 등과 함께 시와 술로 즐기면서 세월을 보냈다. 그는 천성이 명민하고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으며 남과 상대하면서 세상 일을 말하지 않았다. 사리에 밝고 마음에 걸림이 없었다. 아들 목첨(睦詹)은 1546년(명종 1) 병오증광문과(丙午增廣文科) 을과(乙科) 7등으로 급제하여 공조참의(工曹參議), 충청도관찰사(忠淸道觀察使), 이조참판(吏曹參判)을 역임하고 사후에 이조판서(吏曹判書)로 추증되었다. 묘는 남양주(南楊州) 평내동(坪內洞)에 소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