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학자. 자는 경로(景老). 호는 국담(菊潭) 또는 숭정처사(崇禎處士). 동몽교관(童蒙敎官) 신(愼)의 아들이다. 가학(家學)을 이어받았으며 '소학'을 항상 애독하였다. 1957년 정유재란 때 의병을 모집하여 창녕의 화왕산성(火旺山城)에서 곽재우(郭再祐)와 함께 싸웠다. 1618년(광해군 10) 인목대비(仁穆大妃)의 폐위문제에 대하여 춘추대의(春秋大義)로써 그 부당성을 지적하는 상소를 지어 올렸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창의(倡義)격문을 돌려 의병을 일으켰으나, 화의(和議)성립의 소식을 듣고 산중에 들어가 숭정처사로 자처하며 학문을 깊이 연구하여 많은 저술을 남겼다. 또한, 정구(鄭逑), 장현광(張顯光) 등과 이기설(理氣說)을 토론하는 등 성리학의 연구에 힘썼다. 1672년(현종 13) 통정대부(通政大夫) 호조참의에 추증되었고, 1694년(숙종 20) 대구의 남강서원(南岡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국담박선생문집', '독서지남 讀書指南', '학문유해 學問類解', '도통연원록 道統淵源錄', '동방학문연원록 東方學問淵源錄', '의례견문해 疑禮見問解'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