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학자. 자는 겸중(謙仲). 호는 춘당(春塘) 또는 도암(桃巖). 아버지는 좌승지에 증직된 언의(彦毅)이며, 어머니는 진성이씨(眞城李氏)로 이우(李○)의 딸이다. 이황(李滉)의 문인이다. 1555년(명종 10)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1605년(선조 38) 수직(壽職)으로 용양위부호군(龍○衛副護軍)이 되었다. 어려서 이황의 형제들과 함께 외할아버지인 이우에게 글을 배웠고, 뒤에 이황을 스승으로 섬겨 일거일동을 지시에 따르니 스승도 '이정전서 二程全書'를 손수 베껴주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72세의 고령으로 직접 전쟁에 참가하지 못함을 한탄하여 조목(趙穆)과 김성일(金誠一)에게 글을 보내 국방에 전력함을 독려하고, 이여송(李如松) 에게도 글을 보내 전공을 치하하였다. 글씨를 잘 써서 금보(琴輔), 이숙량(李叔樑) 등과 함께 선성삼필(宣城三筆)의 칭호를 얻었다. 군위의 남계서원(南溪書院)에 봉향되고, 저서로는 '춘당문집' 2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