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학자, 문장가. 자는 계응(季鷹). 호는 운곡(雲谷). 사련(祀連)의 4남1녀 중 막내아들로, 익필(翼弼)의 동생이다. 그의 아버지 사련이 안당(安○)의 서매(庶妹)인 감정(甘丁)의 아들이었으므로 법의 규정대로 얼손(孼孫)에 해당되어 신분상의 제약을 크게 받다가 아버지대부터 양민 노릇을 하였다. 그의 형 익필은 이이(李珥)를 시종 옹호하였는데, 소장사류들은 이이가 동서분쟁에 중립적 태도를 취하면서 보다 적극적으로 신진사류를 옹호하지 않은 데 대한 불만으로 익필을 심의겸(沈義謙)의 당(黨)으로 지칭하고, 이이에 대한 함원(含怨)을 동인(東人)들이 익필에게 전가하여 1589년(선조 22)에 일족을 노예로 환천(還賤)시켰다. 그리하여 일족이 유리분산되는 비극을 당하였다. 지금으로서는 그의 생애에 대해서 알 길이 없지만, 그는 형 익필과 함께 선조 때의 성리학자, 문장가로 이름이 있었다. 이이는 성리(性理)의 학을 토론할만한 사람은 익필 형제뿐이라고 하였다. 박인로(朴仁老), 김지백(金知白), 최대겸(崔大謙), 박신립(朴信立), 조호인(曺好仁), 박준민(朴俊民), 김상문(金尙文) 등과 교유하였다. 시 32수와 잡저가 익필의 '구봉집 龜峯集'에 부록으로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