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전기의 학자. 자는 예근(禮謹). 호는 지월당(池月堂). '동국문감(東國文鑑)'의 편자인 쾌헌(快軒) 김태현(金台鉉)의 9세손이다. 그의 조부는 김양길(金陽吉)이며 아버지는 김삼성(金三省)이다. 그는 4형제의 막내로 그의 형은 김사치(金思恥), 김극치(金克恥), 김석치(金錫恥)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지혜가 뛰어나 스승에게 학문을 배우기 전에 이미 문장을 이루었고, 10세 때 지은 시를 이숭인(李崇仁)이 보고 칭찬하였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들어서자, 비록 14세의 어린 나이였으나 세상에 뜻을 버리고 과업(科業)을 포기하였다. 그는 경전과 성명(性命)의 도를 밝히고 수신에 전력하였으며, 때로 전국의 명승고적을 주유하여 이를 시로 지었다. 후에 삼현사(三賢祠)에 봉안되었다. 그의 시는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다수가 실렸으며, 저서로 '지월당유고(池月堂遺稿)'가 전한다. 그러나 최근에 그의 시로 알려진 작품 대부분이 그의 저작이 아닌 것이라고 주장하는 논문이 발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