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말기의 학자. 자는 순가(舜歌). 호는 방산(舫山). 경상북도 선산군 임은(林隱, 지금의 구미시 임은동)에서 출생. 아버지는 증참찬 조(祚)이다. 29세에 허전(許傳)의 집지문인(執持門人)이 되었는데, 허전은 이익(李瀷) - 안정복(安鼎福) - 황덕길(黃德吉)로 이어진 성호학파의 실학을 이은 인물이고 허훈은 허전의 학통을 이었다. 의병(義兵) 군수(軍帥)인 허위(許蔿)가 아우인데, 허위의 손자들은 모스크바에 진(眞), 타시켄트에 선산(善山) 등이 거주하고 있다. 허훈의 성리설에 관한 생각을 짐작할 수 있는 글은 '심설 心說'과 '사칠관견 四七管見'이며, 실학과 유관한 것은 '염설 鹽說', '포설 砲說', '차설 車說', '패수설 浿水說', '해조설 海潮說' 등이 있다. 그는 '사칠관견'과 '심설'에서 이이(李珥)의 성리설이 이황(李滉)의 견해와 다른 문제들을 비판하였고, 이황의 학문적 정통성을 재천명, 계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