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말기의 학자. 자는 대화(大化). 호는 성암(誠庵). 도정(道精)의 아들이다. 이항로(李恒老)의 문인으로 경학(經學)연구에 전심하는 한편, 서당을 세워 제자들을 가르쳤다. 고종 때 판서 남정철(南廷哲)이 기자묘수호소(箕子墓守護所)를 설치하여 도내에서 학문과 덕행이 높은 인사를 뽑을 때, 입직수호생(入直守護生)과 주학교수(州學敎授)로 임명되자 사퇴하였다가 주위의 권유로 보름 동안 근무한 적이 있었다. 뒤에 덕천군수를 지냈다. 관서지방에서 당시 으뜸가는 학자라고 찬양을 받았다. 65세로 죽었으며, 저서로는 '성암문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