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조수성(曺守誠)
  • 창녕조씨(昌寧曺氏)
조선 후기의 의병장. 병조판서 흡(恰)의 후손으로, 현감 굉중(○中)의 아들이다. 1576년(선조 9)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학문이 정미(精微)하고 언행이 독실하여 집에 있을 때에도 법도가 있었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종질 황(煌)과 읍 사람 최명해(崔鳴海), 임시태(林時泰) 등과 더불어 창의하여 격문을 사방에 돌려 군량(軍粮)을 모집하였다. 한림 양만용(梁曼容), 옥과현감 이흥발(李興○) 형제, 순창군수 최온(崔○) 등과 더불어 여산군(礪山郡)에 모여 남한산성을 향하던 중, 청주에서 적과 화의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군려(軍旅)를 해산하였다. 그뒤 참판 김반(金槃)이 이를 듣고 천거, 헌릉참봉(獻陵參奉)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세상일에 뜻을 끊고 일생을 마쳤다. 도내의 사림들이 건의하여 산산(蒜山)의 역정사우(○亭祠宇)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