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의병장. 자는 여수(汝修). 호는 동계(東溪). 전주 출신. 김장생(金長生)의 문인이다. 1613년(광해군 5)에 인목대비의 폐모론이 일어나자 항소(抗疏)하여 그 그릇됨을 극언하고 과거에는 응하지 않았다. 1623년(인조 1) 인조반정 후 효릉참봉(孝陵參奉)에 임명되었으나 나가지 않았으며, 1624년에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근왕(勤王)하고 난이 평정된 뒤에 남은 곡식을 모두 국가에 반납하였다. 또한, 1627년에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양호호소사(兩湖號召使) 김장생의 막하로 행재소(行在所)에 나갔고, 그뒤 1636년 병자호란 때에도 의병을 일으켜 청나라와 항쟁하였다. 최명룡(崔命龍), 김동준(金東準) 등과 강학하여 삼현(三賢)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전주 보광사(○光祠)에 향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