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양대박(梁大樸)
  • 남원양씨(南原梁氏),  출생~사망 : 1544 ~ 1592
조선 중기의 의병장. 자는 사진(士眞). 호는 송암(松巖), 죽암(竹巖), 하곡(荷谷), 청계도인(靑溪道人). 1592년(선조 25) 4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학관(學官)으로서 아들 경우(敬遇)와 가동(家○) 50명으로 의병을 일으켰다. 같은해 6월 고경명(高敬命)이 담양에서 의병을 일으키자, 고경명을 맹주로 추대하고 유학(幼學) 유팽로(柳彭老)와 함께 종사관(從事官)으로 활약하였다. 같은달 7일 정군(整軍)하고, 8일 출사(出師)하자 그는 전주로 가서 의병 2, 000명을 모집하기도 하였다. 이때의 과로로 발병하여 진산(珍山)의 진중에서 죽었다. 1786년(정조 10) 10월 전라도 진사 이진희(李鎭熙) 등의 상언(上言)에 의하여 병조참의로 추증되었으며, 1796년 9월 보국숭록대부 판중추부사 겸 병조판서(輔國崇祿大夫判中樞府事兼兵曹判書)로 개증(改贈)되었다. 저서로는 '청계집 靑溪集'이 있다. 시호는 충장(忠壯)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