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이정신(李鼎新)
  • 영천이씨(永川李氏)
조선 중기의 의병. 자는 섭지(燮之). 호는 묵은(○隱). 할아버지는 참봉(參奉) 이몽득(李夢得)이고, 아버지는 찰방(察訪) 이영선(李榮先)이다. 1618년(광해군 10) 무오증광사마시(戊午增廣司馬試)에 진사(進士)로 합격하였으나 당시 이이첨(李爾瞻)이 인목대비(仁穆大妃)의 폐모론을 주장해서 이듬해 대비를 서궁(西宮: 경운궁, 지금의 덕수궁)에 유폐시키는 일을 제멋대로 자행하는 정국에 염증을 느껴 그는 과방(科榜)에 불응하고 귀가하였다. 병자호란(丙子胡亂)이 발발하자 재종제(再從弟) 야은(野隱) 이정태(李鼎泰)와 함께 의병을 일으켜 여산(礪山) 에까지 이르렀다가 화의가 성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통곡하였다. 이러한 사실이 이재(李縡)의 '존양록(尊攘錄)'에 실려 있다. 후에 대치사(大峙祠)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