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자는 자룡(子龍). 호는 풍암(楓巖). 붕섭(鵬燮)의 아들이고, 의병장인 덕령(德齡)의 동생이다. 광주(光州) 석저촌(石底村)에 살았다.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담양부사 이경린(李景麟), 장성현감 이귀(李貴) 등의 권고로 형 덕홍(德弘), 덕령(德齡) 등과 함께 의병을 규합하여 왜군을 전라도 곳곳에서 격파하였다. 그뒤 덕홍이 고경명(高敬命)과 함께 금산에서 전사한 데다가 덕령이 무고에 의해 옥사하자 향리에 돌아가 세상의 일에는 뜻을 두지 않고 학문연구에만 힘을 기울였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안방준(安邦俊)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으나 노병이므로 전장에는 나가지 못하고 죽었다. 1785년(정조 9) 전라도 유생 기석주(奇錫周) 등의 상소에 의해 큰형 덕홍과 함께 포상,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