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의 의병. 자는 계유(季悠). 호는 설파(雪坡). 직장 대기(大器)의 아들이다.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아버지가 의병을 일으켜 광주로 가서 고경명(高敬命), 고종후(高從厚) 부자와 합할 때, 형 장원(長源)과 함께 종군하여 여러 곳에서 싸웠다. 1597년 정유재란 때에도 의병을 일으켜 임환(林○)과 함께 적을 격파하고,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李舜臣)의 휘하에 들어가 계원도유사(繼援都有司)가 되었으며, 군사와 군량을 모집, 조달하였다. 광해군이 즉위한 뒤 대북세력이 권력을 독점하자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 1624년(인조 2)에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났을 때에도 의병을 일으켰으며, 1636년 병자호란 때에는 75세의 고령으로 고향의 지사 조행립(曺行立)과 함께 근왕병(勤王兵)을 모집하였는데, 이흥발(李興○) 등을 그 휘하에 거느렸다. 그러나 청나라 와의 화친이 이루어지자 군사를 해산하고 영암(靈巖)으로 돌아가 만년을 보냈다. 덕행이 보고되어 참봉을 제수받았으나 취임하지 않았다. 호조참판에 증직되었으며, 무안(務安)의 죽정서원(竹亭書院)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