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왕족. 선조의 왕자인 인성군(仁城君) 이공(李珙)의 증손이며, 화춘군(花春君) 이정(李㵾)의 아들이다.
종실이면서도 서민적인 성격이었으며, 학문이 깊고 달변이었다. 영조의 신임이 두터워 수시로 그 자문에 응하여 영조가 추진하는 탕평책에 크게 기여하였다. 1723년(경종 3) 동지사 겸 진하사(冬至使 兼 進賀使)가 되어 청나라에 다녀오고, 1725년(영조 1) 동지사가 되어 다시 청나라에 다녀왔다. 청나라에 가서 타고난 달변과 깊은 학식을 바탕으로 어려운 외교문제를 해결하자, 왕의 신임은 더욱 두터워져서 1726년 사은사 겸 진주사 로, 1728년 진주사 로, 1730년 동지사 겸 사은사 로, 1744년 동지사 겸 사은사로 여러 차례 청나라에 다녀왔다. 왕으로부터 많은 포상을 받았으나 왕의 신임이 두터워지자 점차 교만해져서 부정한 방법으로 재산을 모아 사치를 하자 대간의 탄핵을 받기도 하였다.
종실이면서도 서민적인 성격이었으며, 학문이 깊고 달변이었다. 영조의 신임이 두터워 수시로 그 자문에 응하여 영조가 추진하는 탕평책에 크게 기여하였다. 1723년(경종 3) 동지사 겸 진하사(冬至使 兼 進賀使)가 되어 청나라에 다녀오고, 1725년(영조 1) 동지사가 되어 다시 청나라에 다녀왔다. 청나라에 가서 타고난 달변과 깊은 학식을 바탕으로 어려운 외교문제를 해결하자, 왕의 신임은 더욱 두터워져서 1726년 사은사 겸 진주사 로, 1728년 진주사 로, 1730년 동지사 겸 사은사 로, 1744년 동지사 겸 사은사로 여러 차례 청나라에 다녀왔다. 왕으로부터 많은 포상을 받았으나 왕의 신임이 두터워지자 점차 교만해져서 부정한 방법으로 재산을 모아 사치를 하자 대간의 탄핵을 받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