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왕족. 자는 노백(魯伯). 호는 노주(鷺洲). 선조의 증손이며, 인흥군(仁興君) 이영(李瑛)의 손자이다. 낭원군(朗原君) 이간(李侃)의 아들이며, 낭선군(朗善君) 이우(李俣)에게 입양하였다.
처음에 전평부정(全坪副正)에 봉하여졌으나 1679년(숙종 5) 삼조어필(三朝御筆)에 관한 소를 올린 공으로 전평군(全坪君)에 봉하여졌다. 1674년(현종 15) 효경전향관(孝敬殿享官)을 지내고, 1676년(숙종 2) 춘전(春殿: 世子宮) 강(講)에서 상으로 말을 하사받았다. 1680년 보사공신(保社功臣)으로 책록되어 회맹제(會盟祭)에 참여하였다. 그뒤 여러번 총관(摠管)을 역임한 뒤 병으로 사임하였다. 1689년 인현왕후(仁顯王后)가 폐위되자, 이를 반대하는 극간상소(極諫上疏)를 하였다. 문명(文名)이 높았으며, 작은 방에 사락당(四樂堂)이라는 편액을 걸어 놓고 학문과 풍류를 즐겼다. 또한, 그 성품이 청빈을 좋아하여 평생토록 가난하게 살았다. 천마(天磨), 금강(金剛) 등의 명산을 찾아 산수를 즐기기도 하였다. 저서로는 '노주집(鷺洲集)'이 있다.
처음에 전평부정(全坪副正)에 봉하여졌으나 1679년(숙종 5) 삼조어필(三朝御筆)에 관한 소를 올린 공으로 전평군(全坪君)에 봉하여졌다. 1674년(현종 15) 효경전향관(孝敬殿享官)을 지내고, 1676년(숙종 2) 춘전(春殿: 世子宮) 강(講)에서 상으로 말을 하사받았다. 1680년 보사공신(保社功臣)으로 책록되어 회맹제(會盟祭)에 참여하였다. 그뒤 여러번 총관(摠管)을 역임한 뒤 병으로 사임하였다. 1689년 인현왕후(仁顯王后)가 폐위되자, 이를 반대하는 극간상소(極諫上疏)를 하였다. 문명(文名)이 높았으며, 작은 방에 사락당(四樂堂)이라는 편액을 걸어 놓고 학문과 풍류를 즐겼다. 또한, 그 성품이 청빈을 좋아하여 평생토록 가난하게 살았다. 천마(天磨), 금강(金剛) 등의 명산을 찾아 산수를 즐기기도 하였다. 저서로는 '노주집(鷺洲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