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효종의 정비. 성은 장씨(張氏). 아버지는 우의정 장유(張維)이며, 어머니는 우의정 김상용(金尙容)의 딸이다.
1630년(인조 8) 봉림대군(鳳林大君)의 부인으로 간택되어 다음해에 가례를 올리고 풍안부부인(豊安府夫人)으로 봉하여졌다. 병자호란 뒤 소현세자(昭顯世子)와 봉림대군이 심양(瀋陽)에 인질로 갈 때 따라가 8년간이나 머물면서 많은 뒷바라지를 하였다. 1645년 소현세자가 죽으면서 봉림대군이 세자가 되자 세자빈이 되었으나, 책봉을 제때 받지 못하여 사저(私邸)에서 왕자를 낳게 되었다. 그뒤 책봉되어 1649년 효종이 즉위하면서 왕비가 되었고, 2년 뒤 정식으로 책명을 받았다. 1661년(현종 2) 효숙(孝肅)의 존호를 받아 왕대비로 있다가 1674년 질병을 얻어 오래 신고하다 회상전(會祥殿)에서 죽었다. 이때 그녀의 시어머니인 인조비 조대비(趙大妃)가 어떤 복(服)을 입느냐 하는 예송(禮訟)이 일어나, 기년복(朞年服), 대공복(大功服)을 둘러싸고 송시열(宋時烈)과 윤휴(尹○)의 대립이 크게 일어났다. 소생은 1남 5녀로 현종, 숙안(淑安), 숙명(淑明), 숙휘(淑徽), 숙정(淑靜), 숙경(淑敬) 등 공주이다. 경렬명헌(敬烈明獻)의 휘호(徽號)가 올려졌다.
1630년(인조 8) 봉림대군(鳳林大君)의 부인으로 간택되어 다음해에 가례를 올리고 풍안부부인(豊安府夫人)으로 봉하여졌다. 병자호란 뒤 소현세자(昭顯世子)와 봉림대군이 심양(瀋陽)에 인질로 갈 때 따라가 8년간이나 머물면서 많은 뒷바라지를 하였다. 1645년 소현세자가 죽으면서 봉림대군이 세자가 되자 세자빈이 되었으나, 책봉을 제때 받지 못하여 사저(私邸)에서 왕자를 낳게 되었다. 그뒤 책봉되어 1649년 효종이 즉위하면서 왕비가 되었고, 2년 뒤 정식으로 책명을 받았다. 1661년(현종 2) 효숙(孝肅)의 존호를 받아 왕대비로 있다가 1674년 질병을 얻어 오래 신고하다 회상전(會祥殿)에서 죽었다. 이때 그녀의 시어머니인 인조비 조대비(趙大妃)가 어떤 복(服)을 입느냐 하는 예송(禮訟)이 일어나, 기년복(朞年服), 대공복(大功服)을 둘러싸고 송시열(宋時烈)과 윤휴(尹○)의 대립이 크게 일어났다. 소생은 1남 5녀로 현종, 숙안(淑安), 숙명(淑明), 숙휘(淑徽), 숙정(淑靜), 숙경(淑敬) 등 공주이다. 경렬명헌(敬烈明獻)의 휘호(徽號)가 올려졌다.
능은 여주의 영릉(寧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