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기의 종실. 호는 명성당(明誠堂). 아버지는 세종이다. 1432년(세종 14) 광평대군으로 봉해지고 1436년에 신자수(申自守)의 딸과 혼인하였다. 그해 성균관에 입학하여 학문에 힘써 '효경', '소학', 사서삼경, '좌전 左傳' 등에 능통하였고, '문선 文選'과 이백(李白), 두보(杜甫), 구양수(歐陽修), 소식(蘇軾) 등의 문집을 읽고 국어, 음률, 산수에도 밝았다. 1437년 방번(芳蕃)에게 입양되어 후사(後嗣)가 되었다. 1438년에 새로이 개척한 북변(北邊)의 국방강화 및 풍속교화를 위하여 서울에 경재소(京在所)를 두고 종친으로 하여금 주관하도록 할 때, 그는 종성(鐘城)을 맡았다. 성품이 너그럽고 용자(容姿)가 풍미하며 총명, 효제하고 서예와 격구에도 능하였다. 20세의 나이로 요절하였다. 시호는 장의(章懿)이다. 이름은 여(璵), 자는 환지(煥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