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담양군(潭陽君) 이거(李璖)
  • 전주이씨(全州李氏),  출생~사망 : 1439 ~ 1450
조선 초기의 종실. 이름은 이거(李璖). 세종의 서자로 1439년 1월 8일에 태어났다. 어머니는 신빈김씨(愼嬪金氏)이다. 시호는 회간(懷簡), 후에 이애(夷哀)로 고쳤다.

어릴 때부터 성품이 온화하고 선량하며 효심이 뛰어났으며 형제간의 우애가 돈독하였다. 거처에 법도가 있고 시서를 좋아하였으며 성장할수록 기품이 활달하고 매사에 경건하였다. 금지옥엽으로 자라났으나 주야로 게으른 빛이 없었으니 대왕과 모친의 총애는 이루 다 말할 수 없고 장래의 여망과 공론은 심상에 비할 바 아니었다.

7세 때인 1445년 담양정(潭陽正)에 책봉되었고, 1448년(세종 30) 담양군에 봉하여졌다. 1450년에 부왕 세종이 승하하자 담양군은 매우 애통해하면서 이후 상복 차림으로 통곡만 하며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하는 등 비통한 기색을 역력히 드러냈으며, 결국 5개월이 지난 1450년 8월에 향년 12세로 별세하였다.

이때 마침 세종의 상중이었기 때문에 그를 위한 복상은 없었다. 그러나 담양군이 사망하기 전 중추원부사 남경우(南景佑)의 딸과 혼담이 있었기 때문에 그녀의 복상이 문제되었다. 납채가 오가지는 않았으나 납채, 친영의 시기가 이미 정해졌기 때문에 결국 복상하게 하였다.

문종이 특히 애통하게 여기고 장지를 하사하였으며 시호를 회간(懷簡)이라 내렸다가 뒤에 이애(夷哀)로 고쳐 하사하였다. 후사가 없으니 세조가 특명을 내려 계양군의 차남 강양군(江陽君) 이숙(李潚)을 양자로 세워 봉사(奉祀)하게 하였다.

태봉은 경상도 성주 북쪽 30리 선석산(禪石山)에 모셨다. 묘소는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 금파리 파평산 서쪽 기슭 을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