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종친. 자는 백첨(伯瞻). 중종(中宗)의 4대손이고 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 이초(李○)의 증손이다. 조부는 하원군(河原君) 이정(李○)으로 아버지는 영제군(寧堤君) 이석령(李錫齡)이다. 어머니는 당진군부인(唐津郡夫人) 한씨(韓氏)로 대사헌(大司憲) 한숙(韓淑)의 손녀이다. 병조판서(兵曹判書) 김이원(金履元)의 딸 선산김씨(善山金氏)와 혼인하여 4남 4녀를 두었다. 15살 때 3품 작(爵)을 제수 받아 호안정(湖安正)이 되었고, 뒤에 도정(都正)이 되었으며 나중에는 2품 호안군(湖安君)이 되었다. 광해군(光海君) 때 인목대비(仁穆大妃)의 서궁(西宮) 유폐를 반대하여 고초를 겪었으며, 갑자사화(甲子士禍) 때는 옥에 갇히기까지 했다. 후에 흥해(興海)에 유배되었다가 방면되었다. 정묘호란(丁卯胡亂) 당시에는 인조를 호종하여 강화로 파천하였다. 그 뒤 다시 옥사에 연루되어 강진(康津)에 유배되었는데, 만년에 다시 복권되었다. 종친들에게 신의가 돈독하였으며, 관대한 성품이었다. 1665년(효종 6) 3월 19일 70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