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종실출신 서화가. 자는 석경(碩卿). 호는 관란정(觀瀾亭). 선조의 열두째 아들인 인흥군(仁興君) 영(瑛)의 큰아들로 낭성군(朗善君)에 봉해졌다. 1662년 7조(七朝)의 어필을 모사하여 간행하였고, 그 공으로 숭헌대부(崇憲大夫)가 되었다. 1663년 진위무진향정사(陳慰撫進香正使)로서 청나라에 갔다 뇌물로 4천금을 사통한 죄로 귀국한 뒤 삭직당하였다가 복권되었다. 1671년과 1686년에 문안사(問安使)와 사은사(謝恩使)가 되어 다시 청나라에 다녀왔다. 1674년 인선대비(仁宣大妃)가 죽자 수릉관(守陵官)을 지내기도 하였다. 글씨와 함께 묵란(墨蘭), 묵죽에 능했다 한다. 유작으로 글씨에는 백련사사적비(白蓮寺事蹟碑) 등의 비액(碑額)이 전하는데 그림은 전하는 것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