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종실. 자는 자호(子豪). 증조부는 성종의 아홉째 아들인 경명군(景明君) 이침(李○)이고, 조부는 명선대부(明善大夫) 이수련(李壽鍊) 인데, 안남도정(安南都正)을 지내고 후에 다시 중의대부(中義大夫) 안남군(安南君)으로 추증되었다. 아버지는 숭덕대부(崇德大夫) 문성군(文城君) 이건(李健)이다. 어머니는 좌의정(左議政) 김명원(金命元)의 딸로 계림현부인(鷄林縣夫人)으로 봉해졌다. 부인은 고령신씨(高靈申氏)로 문충공(文忠公) 신숙주(申叔舟)의 7세손이다. 8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조모인 심씨(沈氏)의 손에 자랐다. 일찍이 창선대부(彰善大夫) 시림부정(始林副正)에 제수되었으며, 뒤에 다시 정의대부(正義大夫)에 올랐다. 1627년 정묘호란(丁卯胡亂) 때 부총관(副摠管)이 되어 강화로 떠나는 어가를 호종하였다. 예학(禮法)과 수양(修養)을 좋아하였으며,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했다. 1640년(인조 18) 6월 26에 사망하여 양주(楊洲) 옹장리(甕匠里)에 있는 선영에 묻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