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종실. 인조의 삼남 인평대군(麟坪大君)의 아들이다. 복선군(福善君)에 봉하여졌다. 일찍이 사은사, 동지사, 변무사 등으로 여러번 청나라에 다녀왔다. 1608년(숙종 6) 경신대출척 때 김석주(金錫胄), 김익훈(金益勳) 등이 허적(許積)의 서자인 허견(許堅)이 종실인 복창군(福昌君), 복선군, 복평군(福平君)의 3형제와 같이 역모한다고 무고하여 옥사가 일어났다.이 일로 인하여 형 복창군 및 아우 복평군과 함께 역모죄로 유배, 사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