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예종의 비. 청주한씨(淸州韓氏) 로, 자헌대부 삼사좌복야 문열공(資憲大夫三司左僕射文烈公) 상질(尙質)의 증손녀이고, 영의정부사 기(起)의 손녀이며, 아버지는 상당부원군(上黨府院君) 영의정(領議政) 명회(明澮)이고, 어머니는 고려의 문하시중 민지(閔漬)의 5대손인 가정대부(嘉靖大夫) 한성부윤(漢城府尹) 대생(大生)의 딸이다.
내외가가 당대의 문벌인 가문에서 태어난 한씨는 아름답고 정숙하여 1460년(세조 6) 세자빈(世子嬪)으로 책봉되어 가례를 행하였다. 세조의 총애를 받았으나, 1461년 원손(元孫: 仁城大君)을 낳은 뒤 병으로 인하여 녹사(錄事) 안기(安耆)의 집에서 요절하였다. 1472년(성종 3) 장순왕후에 추존되었다. 능은 공릉(恭陵)이며, 파주 남쪽 보시동(普施洞)에 있다.
내외가가 당대의 문벌인 가문에서 태어난 한씨는 아름답고 정숙하여 1460년(세조 6) 세자빈(世子嬪)으로 책봉되어 가례를 행하였다. 세조의 총애를 받았으나, 1461년 원손(元孫: 仁城大君)을 낳은 뒤 병으로 인하여 녹사(錄事) 안기(安耆)의 집에서 요절하였다. 1472년(성종 3) 장순왕후에 추존되었다. 능은 공릉(恭陵)이며, 파주 남쪽 보시동(普施洞)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