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0년(세조 6)에 한명회(韓明澮)의 딸이 세자빈에 책봉되어 가례를 행하였으나, 이듬해에 병사하였므로 1462년 세자빈에 간택되었고, 1468년 예종이 즉위하자 왕비에 책봉되었다. 그러나 이듬해 예종이 병사하여 1471년(성종 2)에 인혜대비(仁惠大妃)에 봉해졌다. 1497년(연산군 3)에 명의대비(明懿大妃)에 책봉되었다. 소생으로는 제안대군(齊安大君)과 현숙공주(顯肅公主)가 있었으니, 제안대군은 특히 효성이 지극하였다. 능은 창릉(昌陵)으로서 경기도 고양군 신도면 서오릉(西五陵) 묘역에 예종과 합장하였다.
1460년(세조 6)에 한명회(韓明澮)의 딸이 세자빈에 책봉되어 가례를 행하였으나, 이듬해에 병사하였므로 1462년 세자빈에 간택되었고, 1468년 예종이 즉위하자 왕비에 책봉되었다. 그러나 이듬해 예종이 병사하여 1471년(성종 2)에 인혜대비(仁惠大妃)에 봉해졌다. 1497년(연산군 3)에 명의대비(明懿大妃)에 책봉되었다. 소생으로는 제안대군(齊安大君)과 현숙공주(顯肅公主)가 있었으니, 제안대군은 특히 효성이 지극하였다. 능은 창릉(昌陵)으로서 경기도 고양군 신도면 서오릉(西五陵) 묘역에 예종과 합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