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선조의 첫째 공주. 전주이씨(全州李氏) 로, 어머니는 영돈령부사 연흥부원군(領敦寧府事延興府院君) 김제남(金悌男)의 딸 인목왕비(仁穆王妃)이다.
광해군이 즉위하여 영창대군을 역모죄로 사사하고 계비 인목대비를 폐출시켜 서궁(西宮)에 감금할 때 공주도 폐서인(廢庶人)되어 서궁에 감금되었다. 인조반정으로 인조가 즉위하면서 공주로 복권되고, 1623년(인조 1)에 동지중추부사 홍영(洪霙)의 아들인 주원(柱元)에게 시집을 갔다. 인조의 특명으로 사저(私邸)가 중수되었으며, 뒤에 연령군(延齡君)이 사용하였다. 어머니인 인목대비가 죽은 뒤 궁중에서 백서(帛書)가 나왔는데, 그 내용이 무도하다고 하여 공주도 효종의 의심을 받아 영안위(永安尉)의 궁인이 고문을 받아 많이 죽기도 하였으나, 숙종이 즉위하자 다시 종친으로서 후대를 받았다. 숙종 때의 이조참판 홍석보(洪錫輔)는 증손이며, 수찬 이인검(李仁儉)은 외증손이다.
광해군이 즉위하여 영창대군을 역모죄로 사사하고 계비 인목대비를 폐출시켜 서궁(西宮)에 감금할 때 공주도 폐서인(廢庶人)되어 서궁에 감금되었다. 인조반정으로 인조가 즉위하면서 공주로 복권되고, 1623년(인조 1)에 동지중추부사 홍영(洪霙)의 아들인 주원(柱元)에게 시집을 갔다. 인조의 특명으로 사저(私邸)가 중수되었으며, 뒤에 연령군(延齡君)이 사용하였다. 어머니인 인목대비가 죽은 뒤 궁중에서 백서(帛書)가 나왔는데, 그 내용이 무도하다고 하여 공주도 효종의 의심을 받아 영안위(永安尉)의 궁인이 고문을 받아 많이 죽기도 하였으나, 숙종이 즉위하자 다시 종친으로서 후대를 받았다. 숙종 때의 이조참판 홍석보(洪錫輔)는 증손이며, 수찬 이인검(李仁儉)은 외증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