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단종의 정비. 여산송씨(礪山宋氏)로, 부사 계생(繼生)의 증손녀이고, 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 복원(復元)의 손녀이며, 판돈령부사 현수(玹壽)의 딸이다.
성품이 공손하고 검소하며 효우(孝友)가 있어 가히 종묘를 영구히 보존할 수 있는 인물이라 하여 1453년(단종 1) 간택되어 이듬해에 왕비에 책봉되었다. 1455년 세조가 즉위함에 따라 의덕왕대비(懿德王大妃)에 봉하여졌으나, 이듬해 성삼문(成三問), 박팽년(朴彭年), 하위지(河緯地) 등 사육신의 단종 복위운동으로 1457년(세조 3) 단종이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되어 영월에 유배되자 부인으로 강등되었다. 1698년(숙종 24) 노산군이 단종으로 추복(追復)되자 다시 정순왕후로 추복, 신위가 창경궁에 옮겨졌다. 능은 사릉(思陵)이며, 양주 남쪽 군장리에 있다.
성품이 공손하고 검소하며 효우(孝友)가 있어 가히 종묘를 영구히 보존할 수 있는 인물이라 하여 1453년(단종 1) 간택되어 이듬해에 왕비에 책봉되었다. 1455년 세조가 즉위함에 따라 의덕왕대비(懿德王大妃)에 봉하여졌으나, 이듬해 성삼문(成三問), 박팽년(朴彭年), 하위지(河緯地) 등 사육신의 단종 복위운동으로 1457년(세조 3) 단종이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되어 영월에 유배되자 부인으로 강등되었다. 1698년(숙종 24) 노산군이 단종으로 추복(追復)되자 다시 정순왕후로 추복, 신위가 창경궁에 옮겨졌다. 능은 사릉(思陵)이며, 양주 남쪽 군장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