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시인. 자는 계통(季通). 호는 한천(寒泉).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 차징(次徵)이며, 어머니는 진주강씨(晉州姜氏)로 부호군 사일(泗逸)의 딸인데 후처였다. 4남 중 막내로 태어난 그는 시인 내교(來僑)의 동생이기도 하다. 어렸을 때에는 내교에게서 글을 배웠으며, 8세 때 '눈 녹으니 청산이 드러난다(雪盡見靑山). '라는 글을 지어 사람을 놀라게 하였다. 한때는 배천으로가 독서를 하였으며, 29세 때에 진사가 되어 성균관에 들어갔으나 곧 그만두고 여항시인으로 행세하였다. 형을 이어 홍세태(洪世泰)의 문하로 들어갔는데 시재가 있어 당시 여항, 사대부 사이에 시로 이름이 있었다. 집이 궁핍하여 호남의 한천(寒泉)으로 내려가 농삿일을 하기도 하였는데이 때문에 한천이라는 호를 가지게 되었다. 그는 백성들의 생활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여기에 관계된 시작품이 다수 전한다. 그가 관서지방 안찰사 밑에서 세금걷는 일을 한 적이 있는데, 가난한 백성들에게 차마 세금내라고 할 수 없어 빈손으로 돌아오고는 하였다는 일화도 전한다. 그는 평생 공직에 오른 적은 없고 다만 남의 집 기실(記室)을 지낸 것이 고작이다. 홍석보(洪錫輔)는 그를 서기(書記)로 삼아 가까이하였으며, 영남백(嶺南伯) 이었던 조현명(趙顯命)은 그를 객사에 머무르게 하고 함께 시를 수창하는 한편 자제교육을 맡기기도 하였다. 조현명의 객사에서 학질을 앓다가 35세로 요절하였다. 시 재능뿐 아니라 효행으로도 알려졌던 그가 죽자 당시 사림들은 가사(佳士)가 죽었다고 하였다. 저서로 '한천유고' 2권 1책이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