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시인, 의병장. 자는 응서(應瑞). 호는 남간(南磵). 나주 출신. 아버지는 궁궐도감 덕양(德讓)이다. 강항(姜沆)의 문인이며 한때 김장생(金長生)의 문하에서도 학문을 익혔다. 1605년(선조 38) 사마시에 합격하고, 1617년(광해군 9) 별시문과에 장원하였으나 정론(正論)을 썼다는 이유로 시관 권진(權縉)이 합격자명단에서 빼버렸다. 1623년(인조 1) 인조반정으로 경기전참봉(慶基殿參奉)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고, 이듬해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자 격문을 돌려 의병을 모집하였다. 1629년 동당별시에 급제, 별제(別提)를 지낸 뒤 병자호란 때 다시 격문을 돌렸다. 장유(張維)와는 진사동방(進士同榜)으로서 특히 친교가 두터웠으며, 두 사람의 시를 모아 엮은 시집인 '계간수창'과 아울러 시문을 모은 '남간집', '남간집선'이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