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문신. 호는 술와(述窩). 1733년(영조 9) 계축식년사마시(癸丑式年司馬試)에 생원 2등으로 합격한 박중거(朴重擧)의 증손자로, 할아버지는 양호정(養浩亭) 박하진(朴夏鎭)이다. 심재(心齋) 송환기(宋煥箕)의 문인으로 심재와 근와(芹窩) 김희(金熹)는 할아버지 양호정과 함께 경전의 뜻과 예의를 강론하는 등 학문적 교류가 있었던 사이였다. 근와가 그의 학식이 정명하다고 칭찬하였고, 몽오(夢梧) 김종수(金鍾秀)도 '호남의 정학(正學)'으로 평하였다. 정조(正祖)가 '농서(農書)' 10본을 인쇄하여 송환기에게 내려주면서 '사부(師傅)의 문인들 중에 이치를 강구하는 선비가 많을 것이니 대양(對揚)하도록 하라'는 하교가 있자, 이에 박이현은 정심(正心)과 주경(主敬)으로 요체를 삼아야 한다는 내용의 상소를 올렸고, 이 후 여러번 천거되었다. 그의 후손으로 1876년(고종 13) 병자식년문과(丙子式年文科)에 을과 2등으로 합격하여 교리(校理)를 지낸 증손 박노삼(朴魯參)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