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정의(鄭漪)
  • 연일정씨(延日鄭氏),  출생~사망 : 1782 ~ 1832
조선 후기의 문신. 초명은 진명(鎭命). 자는 청부(淸夫) 또는 성여(性汝). 철구(澈九)의 9세손으로, 흥은부위(興恩副尉) 재화(在和)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장헌세자(莊獻世子)의 딸 청선옹주(淸璿翁主)이다. 음보(蔭補)로 정조 말 직장에 출사(出仕), 순조 초에 감찰을 거쳐 1815년(순조 15) 수원판관, 1822년 동부승지, 그뒤 여주목사를 지냈으며, 형조참판으로 치사(致仕)하였다. 과욕(寡慾)하여 마음이 즐겁고 편안하여 항상 밝았을 뿐만 아니라, 신총(神聰)이 있어 널리 경사(經史)를 섭렵하였고, 시문, 서화에도 뛰어났으며 국조전고(國朝典故)에 달통하여 공가(公家)에서 어려운 일이 생기면 자세히 변유(辨諭)하여 뭇 관료가 그의 말을 들었다. 만년에 낙봉(駱峰)의 기슭에 나가 띳집에서 은약(隱約)하게 살면서 야노(野老)들과 어울려 지냈으므로 그가 옛날 높은 시랑(侍郞) 이었음을 아무도 알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