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문신. 초명은 중흠(重欽). 자는 석여(錫餘). 호는 오천(梧泉). 판서 만조(萬朝)의 아들이다. 1711년(숙종 37)에 진사가 되고, 1713년 증광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였다. 1728년(영조 4) 장령, 1743년 병조참지를 거쳐 1747년 승지가 되었다. 1749년 한성부우윤, 1751년 형조참판을 거쳐 호조참판이 되었다. 그뒤 1753년 노인직(老人職)으로 지중추부사가 되었고, 1754년 공조판서에 이르러서는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문장에 매우 능하였고, 만년에는 '주역'을 연구하여 많은 저서를 남겼다. 80세에 숭록대부(崇祿大夫)에 올랐고, 편서로 '완악편 玩樂編', '경사증역 經史證易', '좌역참증 左易參證' 등이 있다. 시호는 양효(良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