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이희발(李羲發)
  • 영천이씨(永川李氏),  출생~사망 : 1768 ~ 1849
조선 후기의 문신. 초명은 영발(英發). 자는 우문(又文). 호는 운곡(雲谷). 의성 출신. 덕방(德枋)의 손자로, 의명(宜明)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윤덕은(尹德殷)의 딸이다. 정동필(鄭東弼) 로부터 학문을 배웠다. 1795년(정조 19)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규장각의 초계문신(抄啓文臣)으로 발탁되었으며, 그뒤 승진하여 순조 때 대사간을 지내고 헌종 초기에는 승지가 되었다. 특히, 1847년(헌종 13)에는 병조참판으로 있으면서 국방태세를 확립하여 외침에 대비하였고, 언로를 개방하여 하의가 상달되도록 주선하는 것과 아울러 근검절약하기를 힘쓰도록 주장하였다. 그뒤 잇달아 승진하여 지중추부사를 거쳐 기로소에 들어갔다가, 1849년에는 형조판서가 되어 한 나라의 기강을 바로잡는 중책을 맡았으나 곧 병이 들어 치사(致仕)하였다. 시호는 희정(僖靖)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