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홍용조(洪龍祚)
  • 남양홍씨(南陽洪氏),  출생~사망 : 1686 ~ 1741
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희서(羲瑞). 호는 금백(金伯). 홍부(洪溥)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홍성원(洪聖元)이고, 아버지는 참판 홍숙(洪璛)이며, 어머니는 이사익(李四翼)의 딸이다.

1717년(숙종 43)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주서와 설서를 거쳐, 1719년에 정언에 오른 뒤 곧 지평이 되었다. 이때 송시열(宋時烈)을 효종의 묘정에 배향할 것과 송시열의 문인 권상하(權尙夏)를 빈사(賓師)의 예로 부를 것을 청하였다. 1721년(경종 1) 연잉군(延○君: 뒤의 영조)의 세제책봉을 반대하는 소론 유봉휘(柳鳳輝)를 처형하라고 상소하였다가 뒤에 소론의 탄핵을 받아 능주목사로 좌천되고 이어서 파직되었으며, 이듬해 왕위계승문제를 둘러싸고 노론과 소론 사이에 일어난 신임사화로 온성에 안치되었다. 1724년 영조가 즉위하자 풀려나와 종부시정에 임명되었다. 곧 상소하여 소론들의 죄상을 낱낱이 파헤쳤다. 이어 동부승지, 좌승지를 거쳐 병조참지가 되었고, 그해 충청도관찰사로 임명되었으며 만기를 채우고 병조참의가 되어 조정에 돌아왔다가 1727년(영조 3) 정미환국으로 다시 정세가 바뀌어 소론이 등장하자 삭출되었다. 이듬해 이인좌(李麟佐)의 난으로 정세가 또 바뀌자 다시 병조참지가 제수되었으나 완강하게 사양하다가 외직인 충주목사를 거쳐, 1731년에 여주목사가 되었고, 이어서 회양부사를 지낸 뒤 호조참의로 조정에 들어와 대사간을 지내고 1741년 삼화부사로 나가 그곳에서 병사하였다.